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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이야기>(Autumn Tale,1998) 사랑, 가능성 그리고 선택
    문화예술 감상기/Movie Talk 2017. 5. 9. 01:37

    <가을이야기>

    Autumn Tale

     

    Film by 에릭 로메르(Eric Rohmer)

     

     

     

     

     

    - 사랑, 가능성 그리고 선택 -

     

    서론-

       영화는 기술적 테크닉이 아니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보면 이 말이 시대의 뒤떨어진 말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표현의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포착하는 영화라는 매체는 대화부분이 절대 빠질 수 없다. 대화를 이어가는데 화려한 기술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사람의 표정, 사람의 행동, 사람의 말투. 이런 기본적인 기록을 포착하기 위해 얼마나 큰 기술이 들어가겠는가? 영화의 기술발전과 무관하게 대화 장면은 언제나 어디서나 찍혔다. 결론적으로 어떤 기술을 쓸 것인가 보다, 어떤 대화를 이어갈 것인가가 영화에 있어서는 더 중요하다. 이 감독의 테크닉이라 함은 그건 기술적 향유가 아닌, 인간의 풍부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감독의 시선일지라. 이건 기술발전이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오로지 감독 본인만이 가질 수 있는 노하우이다. 이건 아마 그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에릭 로메르라는 감독은 이번에 어떤 시선으로 어떤 이야기를 한 것일까? <가을이야기>라는 영화는 감독의 사계절 연작 중 한편이다. 기회가 된다면 <봄이야기>, <여름이야기>, <가을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겨울이야기>까지 연이어 보는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여하튼 나는 최근에 극장에서 마주하게 된 <가을이야기>를 이번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나의 개인적 견해로, 이 작품이 사계절 연작 중 가장 유쾌하면서도 숙성된 맛이 있기 때문이다. 그 숙성된 맛을 설명하기 위해 나는 사랑’, ‘가능성’, ‘선택이라는 세 가지의 키워드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본론으로 넘어가 이 세 가지 키워드의 의미들을 살펴보며 이 영화를 파헤쳐보고자 한다.

     

     

     

    본론-

    사랑

       사랑은 무엇인가? 에릭 로메르 감독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질문이다. <가을이야기>에서도 사랑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여기서 일단 이야기하고 넘어갈 것은 영화가 전반적으로 감독이 생각하는 인간상의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는 점인데, 마갈리라는 캐릭터를 통해 그 부분이 엿보인다. 그녀는 포도농장을 가꾸며 장인 정신을 발휘하는 자신을 사랑한다. 하지만, 외롭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애써 아닌 척 하지만, 결국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다. 두려움이 있을 뿐이다. 마갈리 뿐만 아니라 영화 속 모든 캐릭터는 누군가와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마갈리와 다르게 도드라진다.) 이렇게 감독은 사람의 외로움을 깔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독신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 영화의 전제는 조금 껄끄러운 것이 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사람을 만나고자하는 사람들의 관점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공감을 형성하지 못 할 수도 있다. 또 누군가에게는 진부한 시작 일 수도 있겠다.

       사람은 누군가와의 만남을 희망하고, 누군가와 소통하길 바란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매우 다양하게 그려진다. 로진과 에티엔 그리고 마갈리 아들의 관계에서도 일반적인 사랑을 정의내리지 않고 제각각 움직인다. 이 영화 속에서는 사랑에 대한 다양한 형태가 엉키게 된다. 로진은 자유로운 연애, 에티엔은 젊은 여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 제라드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이자벨은 안정적인 면이 있지만 다른 사랑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갈리처럼 진실한 사랑을 원하는 모습. 그러면서 이 이야기는 매우 재미있게 엉키게 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만나는 욕구가 있지만, 그것을 마주하는 서로의 방식과 관점은 다르다. 이렇게 다양한 관점을 둠으로서 감독은 따분한 교훈을 줄려는 것이 아닌 관객에게 생각과 판단을 이끌어 내어 어떤 교훈을 도출해 낼 수 있게 해준다. 물론, 마갈리에게 조금 편중된 시선이 있지만 그건 캐릭터들의 자연스러운 감정 흐름에 의해 작위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 캐릭터들의 성격이 매우 확실하고 그 사이에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서 제라드가 다시 파티장으로 가는 장면이나, 마갈리가 역에서 다시 파티장으로 가는 모습이 작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대부분 이렇게 자연스럽게 감정을 건드려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우연이라는 것도 가능성의 도마 위에 있다. 결국, 이야기 전체가 인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사랑을 대하는 모습들이 나오고 그것들이 뒤엉킨다. 그리고 각 캐릭터들의 고유한 성격을 통해 이야기는 어떤 결론을 도출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이 작품은 사건을 결말짓는 데 중점이 있는 것이 아닌, 사랑의 태도는 어떻게 이어지는가에 중점을 둔 영화이다. 따분한 교훈처럼 사랑은 이런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사랑의 형태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이야기를 이어갈 것인가가 더 궁금해지는 것이다. 누군가는 마갈리의 해피엔딩이 진부한 결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너무 뻔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갈리의 바램은 제라드를 만나는 마지막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왔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마갈리를 몰아간 것이 아닌, 마갈리가 생각하는 사랑을 간직하는 행위가 영화의 마지막으로 이끈 것이리라. 그렇게 감독은 주입하듯이 우리에게 도덕적 관점을 선사하지 않는다. 캐릭터들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그들의 반응에 의존해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맞이하는 상황들을 우리에게 던져놓는다. 카메라의 시선도 그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관찰한다. 어떤 주관적 개입도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고집한다. 이런 화면 연출은 우리의 주관이, 특히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반응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 온다.

     

     

     

    가능성

       위에서 사랑을 대하는 여러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다면 영화를 통해 보여 지는 사랑의 민낯은 무엇일까? 나는 이 키워드를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제라드와 이자벨의 대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상형을 물어보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고, 한눈에 반하는 너무나 뻔한 로맨스 스토리의 전개와는 정반대의 대화 흐름을 볼 수 있다. 사실 좀 자극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려 했다면 이자벨은 제라드에게 흔들려야하고, 제라드는 이자벨을 더 원해야 한다. 이렇게 스토리가 이어져야 어쩌면 더 재미있는(더 자극적인?!) 이야기 일 수 있다. 그러나 감독은 그것이 진짜 삶이 아니라고 생각한 듯하다. 실제 우리는 극적인 것을 상상할 뿐 현실에서 이행되는 것은 매우 극소수이다. 보통의 사람은 영화 속 제라드와 이자벨의 모습과 같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재는 것이 더 인간적이고 사실적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이 전통적인 로맨스와 정반대로 흐르고 있음에도 오묘하게도 더 공감이 간다. 언제 우리가 모든 로망을 다 채우며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실상 사랑은 가능성에 더 가깝다. 영화에서도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한 사람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이 아닌, 열려있는 사랑을 보여준다. 누구나 다 가능성을 두는 것이다. 그런 사랑의 가능성이 훨씬 더 민낯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평생 한번 두근거리는 사랑을 만난다는 것은 사실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두근거리는 사람을 만날 수는 있어도, 사랑이 이루어지고 난 후 처음의 두근거림은 사라지게 되어있고 어떤 갈등이 그들을 덮칠지 모른다. 사랑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아닌, 작은 촛불의 따뜻함을 바람으로부터 지키려하는 가냘픈 손과 같다. , 사랑은 지키려는 노력에 가깝다.

       마갈리의 모습을 보자. 제라드에게 끌렸지만, 이자벨의 남자라는 생각이 들자 좀 우울하지만 그에 대한 마음을 접으려 한다. 충동이 있었지만, 그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흠모하는 누군가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하고 있다면, 그 상황에서 그를 뺏으려 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것이다. 일반적인 로맨스류의 영화는 어떤 쟁탈전의 구도를 가지지만, 사실 그런 건 조금 더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기적인 사랑을 낳게 하는 아주 얕은 사고만 가져다 줄 뿐이다. 조금 더 생각해 본다면 짝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상대방이 만나는 사람에 대한 배려 또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좀 더 넓은 개념으로 생각해보면 자유이며, 관용이다. 나에게 자유가 있듯이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의 자유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할 자유가 있듯이, 상대방이 타인을 사랑할 자유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갈리는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건 오해여서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영화에서 그려지지만 이 간략한 에피소드를 통해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점은 바로 저런 지점이 아니었을까 한다.

       긴 이야기를 마무리하자면, 어떻게 보면 누군가와 만난다는 사랑은 사실 가능성이라는 기반을 가지고 있다. 가능성이 희박한데 원하는 것은 이 영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매우 어린 것처럼 보인다. 이 가능성의 기반은 다시 말하지만 자유와 관용을 주춧돌로 삼고 있다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할 거라는 것은 매우 우매한 생각이다.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반대로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내가 좋아할 거라는 것도 가능성이 크지 않다. 우연한 타이밍, 우연한 기회. 그렇게 확 끌리지도 않았지만, 어떤 타이밍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사람은 그 가능성을 잡게 되어 있다. 그럴 때 사랑은 뜨뜻미지근한 시작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노력한다면 그 따뜻함은 오래 갈 것이다. 사랑은 시작이 다가 아니다. 노력이 따라야한다. 내가 그녀(혹은 그)를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클 때 비로소 영원히 행복한 사랑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런 지점을 교훈으로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선택

       마지막으로 선택적인 측면에서 이 영화를 보고자 한다. 이 부분에서 이자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자벨이 제라드에게 행하는 행동은 매우 애매모호한 구석이 포함되어 있다. 이자벨은 뜬금없이 자기와 잘 될 가능성은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뭔가 제라드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듯한 이야기이다. 그러자 제라드는 당신은 결혼을 했으니 당연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이어 이자벨은 모든 남자가 날 사랑해주길 바래요. 특히,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이렇게 말한다. 이런 대화에서도 가능성과 선택에 대한 이야기가 도드라진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희박할 뿐이다. 이자벨은 남편이 있다. 여기서 남편이 좀 사이코여야 이야기가 재미있지만, 안타깝게도 남편은 매우 정상이고 자상하다. 그리고 그녀도 그런 남편을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라드와 이자벨의 관계에서 사랑의 가능성은 매우 적다. 사람은 가능성이 주어지면 선택이 언제나 따른다. 스스로 희박한 가능성을 선택할 수도 있다.(이자벨이 제라드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자벨은 조금 더 이성적 판단을 요구한다. 희박한 가능성의 선택이 어떤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나 혹은 어떤 과정을 가져올 것인가를 조금 더 생각해보는 것 같다. 이자벨의 말에서도 나온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기를 원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나에게 열렬히 대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내가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한데 말이다. 그 누구에게나 있는 이런 욕구에 대해 보여주면서 그 감정이 어떻게 조절되어지는 지를 이 둘의 대화를 통해 보여주는 것 같다. 아름답고자 혹은 매력적이고자 하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그 원초적인 본능을 컨트롤 하지 못한다면 어떤 결말을 가져오게 될 것인가? 이 질문이 제라드와 이자벨의 관계성을 가지고 들어나는 것 같다. 사람의 관계는 이렇게 외줄타기와 같다. 하지만 좀 더 깊은 고민을 한다면 나 스스로 더 행복한 선택을 할 수 있다. 가능성은 열려있고, 그 가능성 뒤에는 선택이 따른다.

     

     

     

    결론-

       작품을 몇 가지 키워드로 나누어 보았다. 이렇게 쭉 나열해 보니 에릭 로메르 감독은 조금 이성에 가까운 사람인 것 같다. 영화 속 캐릭터가 즉흥적인 면이 있으나 언제나 차분함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 차분함 속에서 외줄타기를 타듯 캐릭터들의 감정이 흐른다. 그런 재미가 이 영화 속에 있는 듯하다. 사람은 감정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마구잡이로 감정을 내뱉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감정적 존재 일수록 내 감정을 돋보기로 들여다 보아야한다. 내 성격을 알고, 나의 단점을 알고, 그것을 언제나 인지하고 견제하며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 물론, 생각한대로 되는 법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를 알고 있기에 내 감정이 편안한 선택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영화 마지막 이자벨의 모습처럼 약간의 묘한 감정에 휩싸일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그 묘한 감정이 휩싸일 때 차분할 필요는 있다. 그리고 가능성과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앞으로 어떤 과정을 걸치게 될지 또한 그 과정을 내가 잘 감당해서 행복할 수 있는지 이 모든 것을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런 면에서 에릭 로메르 감독은 조금 더 이성에 가까운 것 같다고 언급한 것이다.

       감독이 보수적이고, 카톨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가을이야기>를 통해 느끼는 것은 보수적이어서 감정을 억제해야하는 것이 아닌, 보수적이어서 가정을 소중히 여겨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 순수한 사랑의 민낯을 한번 보자는 것이었고 사람의 관계를 좀 차분히 들여다보자는 점이었다. 사람의 관계형성은 어디에나 열려있고, 그것이 어떤 기준의 선택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치는 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에티엔과 로진의 모습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스스로 행복함을 느낀다면 정말 아무 상관없다. 하지만, 카메라를 통해 보여 지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 불안해 보이며 그리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다. 앞으로 누구를 만나도 그들은 무언가 겉도는 느낌일 것 같다. 그 부분이 포인트이다. 가정을 지키라고 교훈을 주는 영화가 아니다. 수많은 가능성 사이에서 나의 주관으로 내가 무언가 선택하고 행복할 수 있는 가를 묻는 것이다. 사랑은 그런 자유로움 안에서 노력을 통해 아름답고 꽃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가을이야기>는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인간관계 안에는 당연히 사랑의 관계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사랑이라는 복잡 미묘한 관계 앞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면 이 <가을이야기>를 정말로 추천하고 싶다. 사랑이 이루어지던, 이루어지지 않던 본인에게 좋은 조언을 해줄 것이다.

     

    Written by

    두루미

     

     

    이미지출처-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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