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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곡성> 무엇이 중한 걸까? (스포가 있음)
    문화예술 감상기/Movie Talk 2016. 8. 3. 23:46

    <곡성>


    Dir. 나홍진


    - 무엇이 중한 걸까? -

     

    *스포가 있음



    서론 -

       뜨거운 영화였다. 개봉이 되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입소문에 오르락 내리락 하였고, 그 효과는 많은 흥행의 결과를 얻어냈다. 그뿐이겠는가? 상징적인 표현들(?)로 인해 많은 관객들이 블로그나 카페를 통해 해석을 쏟아내는 풍경도 많았다. 여러모로 나홍진 감독은 <추격자>, <황해>를 이어 이번 <곡성>까지 성공한 감독이 되었다.(어떤 성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도저도 아닌 영화라는 것이다. 감독의 컨트롤 아래에서 손에 땀을 쥐게하는 효과가 클 뿐, 그 이후에 남는 것은 없는 느낌이다. 이 작품은 관객을 마법가 같이 끌어들인다. 그럴 수 밖에 없는 플롯의 구조, 화면과 편집의 구성 그리고 사운드의 구성이 있다. 시작부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날 따라와 보세요.' 라고 손짓하는 느낌이었다. 일단 따라가 본다. 하지만 그 후에는 혼란만이 올 뿐이다.

     

     

    - 믿음에 대한 이분법적 잣대 -

       이 영화에서 많이 이야기 되어지는 것이 '믿음'이다. 처음부터 성경말씀이 나오는 것이 이 영화의 무게감(?)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영화가 계속 진행되면서 믿음에 대한 사색보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만 보일 뿐이다.

       주인공이 일본인을 의심하는 장면들을 통해 이 영화는 조금 기대가 되어진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이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그럴싸한 반전들은 다시 한번 이상한 반전을 통해 도로묵이 되어 버렸다. 반전을 위해 이 영화는 마지막까지 온 것이다. 인간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그리 많은 부분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일본인이 다시 악마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누군가는 충격적인 반전이다라고 좋아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필요한 부분이었는가?'라는 질문은 든다. 그러므로써 얻어지는 효과라고는 '오 그런거였어?' 라는 표면적 놀라움 뿐이지 그 반전이 내용적 측면에 있어서는 깊은 효과가 없다. 그리고 오히려 감독이 말하고자하는 주제의식이 흐려진다. 그것이 이 영화의 치명적인 오점이다.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영화의 서론부터 굉장한 무게감을 가지고 가지만 이야기가 점점 긴장감을 가지게 되면서 이 영화는 어쩔 수 없는 상업영화의 선택지점들을 그대로 답습해 간다. 그리고는 알 수 없는 상징들만을 은근슬쩍 배치해 놓는다. 마치 관객들이 이걸 보고 많은 이야기를 하겠지? 하면서 비웃는 느낌이다. 그리고 실상 그 상징들에 대하여 생각해 볼 여유도 이 영화는 가지고 있지 않다. 처음 시작부터 낚시 줄이라던지, 중간에 나오는 마늘, 마지막에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를 가져온 주인공과 여자귀신의 대화. 뭔가 그럴싸해 보이지만, 계속 연관성을 찾아보면 그리 재미있는 논리전개는 나오지 않는다. 그냥 따온 것 뿐이지.

       무엇보다 이 영화는 믿음에 대한 이분법적 잣대를 설정해 놓았다 아주 위험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해한 부분이 맞는 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마지막 부분을 통해 유추해 보건데 여자귀신(천우희)와 남자주인공(곽도원)의 모습을 통해 기독교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되어 진다면 여자귀신은 무언가 예수님의 표현이 될 거란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남자주인공은 그녀의 말을 못 믿고 무속인(황정민)에게 달려간다. 그런데 맞이하는 결과는 죽음이다. 그런 논리라면 우리가 범인이라 생각하는 여자귀신(천우희)가 기독교적 상징이 되고, 무속인(황정민)은 무속신앙의 대표 즉, 귀신의 대표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정리가 되어진다면 귀신을 따르는 인간의 나약한 믿음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란 의미인데, 기독교의 신앙이 이리도 이분법 적이었는가? 하나님의 신앙이 자신을 믿고 안믿고를 생각하여 그런 끔찍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인가? 이 부분은 정말 위험한 부분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감독의 메시지를 주입하기 위한 감정적 선택밖에는 되지 못 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앙이라는 것이 교환의 법칙에 작용으로 성립이 되는 것인가? "너가 믿음을 주면 나는 너를 살려줄거야." 이런 단순한 논리는 변질된 현시대의 교회에서 보여지는 아주 추악한 모습이다. 신앙과 삶이란 그런 단순성에 의해서 생각되어지면 십자군 전쟁과 같은 역사의 검은 그림자를 다시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디 이 영화를 가지고 신앙적인 또는 깊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냥 재미를 위해 존재하는 영화이다. 그 이상 들어가게 된다면 이상한 믿음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 영화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선택지들은 단순히 전통적 서사구조와 스릴러의 효과들을 탁월하게 활용한 것 뿐이다. 그런데 예술성을 보여주고 싶어 이곳 저곳에 상징을 배치해 놓았다. 결국 짬뽕이 된 느낌이다. 어수선한 상징들이 이 영화의 그럴싸한 무게감을 주지만, 물음표를 계속 열고 들어가보았을 때 헤매이게 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단순한 재미로 보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다.

       오싹한 스릴러가 이 더운 여름에 필요하다면 이 영화는 좋은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깊게 빠져들지 말았음 한다. 맹신하다 보면 무서운 믿음이 당신을 갈아먹을 수도 있다.

     

    Written by 두루미

    사진출처: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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