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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스(Youth) _ Paolo Sorrentino
    문화예술 감상기/Movie Talk 2016. 2. 21. 09:42

    유스

    (Youth, 2015作)

     

    Film by

    Paolo Sorrentino

     


    서론

       이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고급스럽지만 공허하다.’ ‘고급공허라는 대립되는 두 단어가 충돌이 되면서 오묘한 매치를 만들어내고 삶의 깊이를 탐구하는 지경에 이르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감독의 시선에 의해 선택되어진 모든 장면들(Mise-en-Scéne)은 버릴 부분이 없다. 모든 것이 유기체처럼 각자의 기능을 하게 되는데, 이는 모든 컷에는 의미가 존재하며 내러티브와 컷의 사이에는 상호작용성이 아주 잘 발휘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이 작품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명확성과 그 가치가 다부지며 더불어 그것을 표현하는 표현력 또한 아주 잘 어우러져 여러 가지의 화음을 자아내는 작품으로서 관객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 작품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예술가가 느끼는 아이러니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삶의 아이러니와 더불어 창작을 해나가는 사람에게는 성공에 대한 개념도 아이러니로 다가온다. 예술을 한다는 것에 대한 개념을 다시 한번 점검해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창작자가 마주하는 환경에 대하여 아주 고요하게 바라보며 그 시선 속에 소렌티노 감독의 '철학'을 심어놓았다.




    본론

    - 공허 -

       사람이란 젊었을 때 무언가를 채우기에 급급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채우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깨달음과 마주하게 된다. 그때 느껴지는 공허함이 영화에서 구구절절하게 표현되어진다. 그것은 공간이 주는 어떤 고급스로운 개념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료함이 부딪히면서 우리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주인공 프레드가 만들어내는 일정한 박자에 따라 움직이는 호텔의 풍경이나, 무료하게 삶을 보내고 있는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들이 어떤 자질구레한 대사 없이 표현이 된다. 호텔의 풍경이나, 수영장의 크기로 봐서는 누구나 다 이 곳이 결코 평범한 사람들이 올 곳은 아니라는 느낌을 준다.(스위스라는 나라도 어떤 상징적인 공간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과 상반되게 그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언가 넋이 나간듯하다. 고요하며 차분하지만, 무언가 활력은 없다. 사람들의 모습은 여유를 즐기는 것처럼 보일 진 모르겠지만, 캐릭터들의 고민들이 대사로 들어나거나 꿈속 장면으로 슬쩍 암시가 되는 것을 보면 그들이 마냥 여유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렇게 아름답고 성공적인 풍경의 모습은 엉킨 실타래를 풀지 못한 캐릭터들과 충돌을 하게 되며 아이러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급스러움 속에서 공허함을 느끼는 것은 이런 사람들의 모습이 반복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공간과 충돌되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느낌을 확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감독은 이런 모습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하는 바가 무엇이었을까? 너무 성공한 사람들(사회적 성공을 성취한 사람들)만이 나와 어쩌면 인간미가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에게 현미경을 들이대어 보면 각자 힘든 점들이 많이 드러나게 된다. 프레드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에 빠져있고, 영화배우 지미는 자신의 존재가 로봇영화로 남는 것이 허무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프레드의 친구인 영화감독 믹은 자신의 유작을 잘 만들기 위한 고민에 빠져있다. 결국, 그들도 성공과 부를 넘어서 하나의 단순한 인간이었다. 믹과 프레드는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그리워하며 시간을 보낸다. 삶의 성공을 은미하기보단 지난 과거에 대한 깊은 묵상에 빠지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삶에 있어 성공이 전부가 아니라는 메시지가 은유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 창작환경에 대한 아이러니 -

      믹의 캐릭터는 예술가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페르소나였던 브랜다가 자신을 배신하는 장면과 그 배신감에 화를 내는 믹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여러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한 가지를 살짝 이야기 해보고 싶다. 그건 영화작업에 대한 시스템적인 부분이다. 드라마로 장기계약을 하며 노후를 편하게 보내고 싶었던 브랜다의 모습을 보며 창작을 해나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돈에 흐름에 따라 배역을 선택할 수 있지만, 브랜다의 모습을 보면 작품에 대한 열정이 커보이지는 않는다. 단지, ‘생계를 위한하나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녀를 나쁘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개인의 자유이니 비난을 받아야만 하는 행동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영화가 제작되는 어떤 환경에 대하여 꼬집고 싶기는 하다.

       그녀가 빠지자 믹의 영화에 투자지원이 중단되게 된다. 브랜다가 출연하지 않는다는 너무나 단순한 이유로 창작은 중단된다.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일정한 다수의 관객을 보유하는 배우를 고용해야 이익을 보는 계산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브랜다가 아니면 안 되었던 것이다. 믹은 브랜다 없이도 영화를 찍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지만, 결국 제작은 중단되고 그는 아이러니 속에서 자신이 스스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재연하며 세상을 떠나게 된다. 창작이 이루어지는 단계에서 이런 아이러니한 작업방식은 당연한 시장경제의 흐름일지는 모르겠으나, 영화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확립되는 과정은 아닌 거 같다. 이건 그냥 상업구조에 의한 체계일 뿐이지 예술을 위한 방식은 아니다. 믹은 많은 영화를 찍은 유명한 베테랑 감독이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딱히 없어 보인다. 브랜다의 대사에서 나오는 것처럼 한때 잘나갔던 감독에 불과했다.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깊이를 더해가는 작품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대중은 그에게서 알게 모르게 떠나갔다. 감독에게 티켓파워가 사라지자 배우들도 그를 피하게 되고, 제작자도 그에게 마냥 신뢰를 주지 못한다. 이런 구조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말 창작자를 위한 환경이 되는 것일까? 예술은 이런 논리에 의해 창작이 허락되어져야하는 것인가?




    - 예술가의 자세 -

       지미라는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 캐릭터는 젊지만 깊은 내공을 지니고 있다. 그는 시종일관 호텔의 많은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지팡이의 행동은 마라도나의 모습을 따왔고, 냅킨을 사용하는 손은 어느 중년부부의 모습을 따왔다. 그밖에 많은 행동들이 여러 사람의 삶의 한 부분을 떼어와 차용하였다.

       그의 자세를 바라보며 영화를 만드는 소렌티노 감독의 철학이 돋보였다. 감독이란 지미의 모습처럼 3자의 입장에서 지그시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이 왜 저렇게 이행되는지 깊게 생각해보는 것이고, 그것을 표현해보는 것이다. 지미가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관찰하고 그것을 다시 해석해내고 표현해 내는 것이 영화가 가지는 예술적 기능일 것이다. 소렌티노 감독은 이런 지미의 모습을 통해 감독이라는 역할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점검한다. 그는 감독의 위치는 대단한 위치가 아니며 그저 인간의 삶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난 존재로서 정리하고 있다. 지미의 모습처럼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삶의 갈등을 지그시 바라보며 그것을 카메라를 통해 끄적일 수 있는 존재로서 감독이라는 역할을 점검하고 있으며, 더불어 감독인 본인 스스로를 다시금 점검하고 있다.

       지미의 모습을 통해 또 하나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창작된 작품에 대한 진실성이다. 지미는 자신이 로봇영화를 했다는 것에 굉장한 수치심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그는 대단한 성공을 했음에도 무엇 때문에 자신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대중예술이라는 아이러니에 대한 반항일 것이다. 자신이 정말 공들여가며 예술로서 대한 작품들은 대중의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찍었을 때 그는 수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정성 없이 찍어도 흥행이 가능하다면 기억에 남게 된다. 돈이 될 만한 것을 해야 한다. 그런 아이러니는 지미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 같다.

       그가 배우로서 행복을 느끼는 부분이 장난감 가게 장면에서 보여 진다. 이런 저런 악세서리를 구경하던 지미는 10대의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녀가 지미를 알아보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너도 로봇영화 봤니?” 그러자 그 소녀는 그게 무슨 영화냐며 오히려 모르는 듯 이야기를 한다. 그런 그녀의 이상한 행동에 흥미를 느낀 지미는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그리고 그녀는 망한 그의 영화 제목을 이야기하며 심지어 인상 깊은 대사까지 토시하나 안 틀리고 재연을 한다. 그때 지미는 나지막하게 말한다. “그 영화를 어떻게 알아? 사람이 많이 보지도 않았는데.......” 그렇지만 그 소녀는 그 영화를 너무나 감명 깊게 보았다며 감사의 표시를 한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지미는 처음으로 뜻 깊은 미소를 띠게 된다.

       이 장면을 통해 느끼는 것은 작품이란 숫자에 의해 가치가 판가름 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숫자를 앞세워 영화의 대단함을 표하고, 순위를 매기듯 높고 낮음을 은근히 가르고 있는 영화 시장 속에서 관객과의 접촉점은 어떻게 형성이 되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지 않더라고 영화 속 10대 소녀처럼 뜻 깊은 대사를 가슴깊이 간직할 수 있고, 그것이 그 소녀의 삶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이 되었다면 영화는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이다. 지미의 미소는 자신이 배우로서 역할을 다 했다는 뿌듯함이었을 것이다. 흥행의 성공이 주는 부가 아닌, 작가로서 누군가와 깊은 소통을 했다는 것이 창작자가 가지는 뿌듯함일 것이다. 창작자는 그것으로서 모든 사명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무리

       영화가 보여주는 주제에 대한 심도 깊은 접근과 그것을 영화로서 풀어내고자 하는 감독의 노력은 영화다운 영화를 감상하게 만들어 주었다. 마지막 오케스트라 공연 장면이 조금 어설퍼 보이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믹의 모습과 아내의 모습을 비현실적으로 배치하는 장면이 너무나 좋아 영화의 모든 것을 망치지는 않았다.

       성공을 위해 삶이 정신없이 지나가는 느낌이 있다면 잠시 여유를 가지고 이 영화를 보았으면 좋겠다. 내가 삶에 초를 치는 제안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 괴로운 영화를 한번쯤은 진지하게 대해봤으면 좋겠다. 삶의 끝에서 마주하는 진실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경험을 통해 얻어야하는 것을 어른이 말로만 가르쳐주는 영화인거 같아 싫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 가. 그것이 사실인 것을....... 이보다 더 발가벗길 수 있는 진실은 없다. 성공 뒤에는 언제나 공허함이 따르기 마련이다. 완벽한 정상이란 없다. 언제나 내리막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실패라는 개념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믹은 그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하며 생을 마치게 된 것이다. 실패가 아니다. 그것이 순리이며 단지 사회적 위치에서 잠시 내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당신의 모든 삶이 실패하는 것이 아님을 꼭 이해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높고 낮음의 위치는 사회가 정한 것임을 명심하자. 더욱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체계 밖에 있다. 우리는 그곳에 시선을 옮겨야 한다.

       <유스>는 아직 젊은 나에게 삶의 큰 틀을 다시 재정비하게 하였다. 사실 평소에 하던 나의 고민들이 이 작품에 집약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작품이 나를 계속 자극하여 정비하게 해야 한다. 이런 작품을 만날 때 마다 나는 거울 앞에서 내 얼굴을 생으로 마주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거울과 같은 작품은 언제나 존재해야만 한다. 나는 삶을 외줄타기로 비유를 많이 한다. 좌우의 균형을 잘 맞추어야 줄 위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욕망의 존재이므로 언젠가 나도 모르게 균형이 무너질 수 있음을 항상 지각하며 살아간다. 살다보면 흔들림은 언제나 찾아온다. 바람이 불어오든, 날이 더워지든 줄 위에서 균형을 잡기란 매번 좋은 환경이 아닐 것이다. 그럴 때 마다 내가 가지는 처방전은 이런 작품을 보며 그 균형을 맞추어 가는 것이다. 꾸준히 그렇게 노력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행복한 나를 발견 할 수 있는 거 같다.



    Written by 두루미

    사진출처-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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