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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랍스터, The Lobster> '사랑의 이면에 대하여'
    문화예술 감상기/Movie Talk 2016. 2. 5. 22:46

    <더 랍스터>

    The Lobster


    Film by

    요르고스 란티모스

    (Yorgos Lanthimos)



    - 사랑의 이면에 대하여 -



    서론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서 남자와 여자가 취하는 자세에 대하여 이 영화는 아주 정밀하게 포착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관객에게 사랑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하여 무엇이 옳은 것인지 질문을 던지기까지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파고들고 싶었던 부분은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정의하고 있는 차이를 나열하여서 여러 가지 반론을 제기하여 보는 것이다. 이 부분을 파고 들어가다 보면 사랑의 이면에 대하여 정밀하게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거라고 본다.




    본론

    근시 *

       영화에서 드러나는 남자의 모습을 살펴보면 모방이라는 키워드를 끄집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절름발이(밴 위쇼)는 코피가 자주 나는 여자에게 관심을 사기위해 코피를 일부러 만들어낸다. 이는 그녀에게 관심을 끌기에 굉장히 큰 무기로 작용한다. 이렇게 여자에게 공감을 얻기 위한 남자의 고군분투는 영화를 보는 남성관객들의 가슴에 크나큰 공감을 불어 일으켰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건 마치 근시와 같은 행동이라고 영화는 표현하고 있다.

       근시는 가까이에 있는 것을 보고 멀리 있는 것은 흐릿하게 잘 보이지 않는다. , 남자들의 그런 행동양식은 마치 근시와 같다는 것을 감독은 주인공 설정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하면, 마음을 얻고 싶은 여자의 특징을 모방하는 것은 실상 남자가 가지고 있는 삶의 한 부분이 아니고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작용한다.(일시적인) 이는 다시 말해 그녀의 마음을 완벽하게 얻게 되는 그 어느 시점에서 사라져버리는 연기와 같은 것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남자가 진실로진실로 그녀와 삶을 함께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한 모방적 삶은 어느 순간 남자의 마음속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결혼 후 달라졌다는 말이 이런 포인트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한다. 그녀의 마음을 얻고자 아주 일시적은 방법을 선택하여 달려가는 늑대들의 향연은 <더 랍스터>의 근시를 가진 남자 주인공과 아주 오묘하게 매치가 된다.






    * 원시 *

       여자는 남자의 근시적인 행동에 화를 낸다. 절름발이가족을 찾아간 데이비드는 코피가 잘 나는 여자에게 그의 코피가 가짜임을 말해주고 나와 버린다. , ‘그 남자는 널 속였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후 코피가 잘 나는 여자는 절름발이에게 매우 화가 나게 된다. 여기서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대하는 태도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여자가 바라보는 건 네가 날 속였어?’이다. 남자의 고군분투는 안중에도 없다. 그저 그가 날 속였어라는 거짓이 남을 뿐이다. 여자가 원하는 삶은 남자의 삶과 진실 되게 일치되는 지점일 것이다. 여자가 느끼는 사랑이란 '나와 같아지는 사람'이 아닌, '나와 같은 사람'이다. 이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위에서 남자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처럼 남자의 일시적인 행동에 여자들은 굉장히 분노한다. 데이비드가 절름발이 친구를 찾아가 갈라놓는 방법 중 하나도 물리적인 방법이 아닌 그가 널 속였다라는 아주 묘한 오해의 지점을 심어준 것뿐이었다. 연애를 오래한 커플들 사이에서 처음이랑 너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느껴지는 그 감정의 공허함은 여자들이 그만큼 나와 같은 사람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나를 따라하는 사람을 원치 않는다. 그것은 그럴싸한 포장지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포장지는 언젠간 벗겨진다. 벗겨진 순간 남자의 다른 진실 된 면을 본다면 그녀는 굉장한 충격에 빠질 것이다.

       여자는 남자보다 더 멀리 보는 것 같다. 같이 살아간다는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에 그리는 느낌이 강하다. 이 남자의 삶을 전체적으로 보고 자신과 삶을 공유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근시적인 차원보다는 조금 더 원시적인 느낌이 강한 것 같다.




    * 어보기 *

       위와 같은 모습들을 바라보며 난 여러 가지 질문이 들었다. 남자들의 근시적인 고군분투가 꼭 나쁜 것인가? 물론, 좋은 점보다는 상처가 될 부분이 많긴 한 것 같다. 그러나 사랑을 얻기 위한 노력이 나쁘다고만 볼 수 있을까? 외로움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치는 것이 꼭 나쁘다고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시작은 모방 이였으나 둘은 어떤 다른 부분에서 완벽히 일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시작이 모방이라고 한들 길게 봤을 때 꼭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한정되게 생각하는 것은 오류일수도 있다. 원시적은 측면의 큰 오점은 경험을 하지 못했음에도 결과를 쉽게 확정지어 버린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미래를 그린다는 것은 우리가 쉽게 상상하여 확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절름발이와 코피가 잘 나는 여자의 상황에서 여자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면 그 가정은 아마 행복하게 잘 살아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마음은 모방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가 그녀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으니 잘 살아가지 않았을까?

       또 한편으로는 사회적 측면을 보고 싶다. 사랑을 강요하는 사회에서는 결코 진실 된 사랑이 나올 수 없다. 영화 속에서 표현되어지는 남자들이 짝을 찾는 모습은 너무나 성급해 보인다.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닌, 단지 몇 가지의 특징들이 맞아 떨어진다고 너무 급하게 커플이 탄생한다. 아마 그 마음속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았다보다 이제 동물이 되지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더 클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는 사랑한다고 하지만, 살고자하는 본능이 누군가를 만나게 하는 것 같다. 내 목이 조여 오면 우리는 최면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살기위해 아무나 만나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캐릭터들이 찌질 하지만 불쌍하다고 느껴진다. 살고자하는 발버둥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사랑의 이면 속에는 어쩌면 이런 눈속임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 사랑에 대한 끝없는 질문들 *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사랑에 대하여 아주 냉소적인 미소를 띠고 있다. 호텔매니저 부부의 모습이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데이비드(콜린 파렐)가 눈을 찌를까 말까 고민하는 부분을 깊게 생각하여 본다면 결국 진정한 사랑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느냐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들은 선뜻 말처럼 행동이 이행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사랑에 대한 환상들이 점점 깨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런 희생이 꼭 이행되어야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성립되어질까라는 질문이 든다. 쓸데없는 희생을 통해 꼭 진심을 확인해야하는 지도 의문이 든다. 나와 다르다고 진심이 안 느껴진다는 여자의 모습도 너무 매정한 것이 아닌가한다. 쓸데없는 희생을 요구하는 여자의 모습도 결코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다.

       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근의 여자(레이첼 와이즈)가 눈이 보였다고 생각한다. 웨이터와 눈이 마주쳤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초점이 맞아 보였다. 그렇다면 그녀는 지금 시험에 빠진 것이다. 솔로부대 대장(레아 세이두)이 던지는 의심의 굴레 속에 빠져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너무 과장되게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된다. 그녀는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데이비드의 희생을 보고 싶어 한다. 이건 너무나 이기적인 마음인거 같다. 그녀가 진정 데이비드를 사랑했다면, 의심의 핵심인 솔로부대를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뱀에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은 이브와 같이 되어버렸다. 그런 그녀의 마음은 결국 데이비드를 엄청난 곤경에 빠뜨린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일까? 사랑을 위해 희생하는 남자의 모습? 아니면 진심을 보고 싶어 하는 여자의 마음? 만약 남자가 이건 미친 짓이야!’하고 떠났다면 그것이 무조건 나쁜 것일까? 만약 여자가 떠나는 남자를 보며 남자들은 다 허물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옳은 생각일까? 사랑에 대하여 우리가 그리고 있는 환상은 무엇인가? 그리고 현실에서 마주하는 사랑에 대한 오점들은 무엇인가? 이 영화는 사랑을 샅샅이 해부하여 찝찝한 이면에 대해 질문을 계속 하고 있다.





    마무리

    * 사랑이면의 음지에 대하여 *

       <더 랍스터>를 너무나 많은 커플들이 보러왔다. 나는 그 커플들의 평화와 안정을 기원했다. 이 영화는 결코 데이트용은 되지 못한다. 이 영화는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표면 뒤에 존재하는 음지를 포착하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달콤한 커플들에게는 굉장히 찝찝한 영화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만약(If)’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남자들과 여자들을 움직이는 것은 그들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커플을 강요하는 사회적 제도도 분명 그들의 행동양식에 작용되어진다. 그러니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일반화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사랑의 음지는 존재한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깊게 생각해보면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 사랑이면에 존재하는 음지와 싸우는 것일 수 있겠다. 서로에 대한 의심을 죽이고, 언제나 믿음으로서 바라봐주며, 설사 거짓이 있더라도 그것을 넘길 수 있는 마음가짐. 그것이 사랑 그 자체라고 생각되어지기도 한다.

       아름다움 이면의 음지를 바라본다고 하여 그것이 전부다 악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가 그 음지를 지각할 때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는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지각하는 순간 모호한 길이 점점 뚜렷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랍스터>를 통해 사랑의 이면에 존재하는 많은 부분을 보았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더 뚜렷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Written by 두루미

    사진출처: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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