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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_ 홍상수
    문화예술 감상기/Movie Talk 2015. 12. 8. 08:33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Film by 홍상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인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인지 헷갈리지만, 아무렴 어떻겠는가. 둘 다 우리에게 틀린 의미는 아니지 않는가? 심지어 띄어쓰기마저.......

       나는 사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후 <하하하>를 걸쳐 지금 이 작품을 보았다. 홍상수 감독의 모든 것을 탐구하고 이 작품을 본 것은 아니기에 진정한 홍상수 감독의 팬들에게는 나의 분석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 생각이 무시되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조금이나마 나의 소견을 글로 이어가보려 한다.

       이 영화만을 두고 이야기하자면, 사실주의가 풍부하게 표현되면서도 그 속에 영화적 구성이 아주 미묘하게 숨어있다. 그리고 며칠 전에 글을 남긴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와 유사한 심볼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두 작품이 상이한 방향성을 가지는 것은 마지막 마침표이다. 실상 두 작품이 마침표를 꽝! 하고 찍는 결말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관객들을 앞으로 어떤 길로 인도하는 지는 약간의 스타일이 다르다. 관객에게 어떻게 앞일을 그려나갈 건지에 대한 초대장이 다르다는 의미이다.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죽음의 지각 후 당신의 삶이라면,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뭐랄까....... 삶의 선택이라는 기로에 서있는 당신에게 던지는 무의미랄까? 그건 본론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 선택에 기로에선 우리에게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어라. 사르트르는 인생이란 B(Birth)D(Death)사이에 C(Choice)라고 말했다. 나를 되돌아봐 하루의 삶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기 전부터 선택은 시작된다. ‘잠에서 깼다. 눈을 뜰 것인가, 말 것인가?’ 사고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선택을 하여 지금까지 삶을 이어왔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선택에 대한 관점은 무엇인가?

       이 영화가 관객에게 선사하는 포인트는 선택이 불러오는 결과라기보다는 우리는 올바른 선택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선택이 불러온 결과의 다른 점 보다는 어떤 선택이 올바른 선택 이였나?’에 대한 생각이 선행한다.

       이 영화가 시작되면서 관객에게 던지는 목표점은 함춘수가 윤희정과 잘 이어질 수 있을까?’ 이다. 함춘수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지점이 있었다. 솔직히 말할까? 아니면 좋은 말을 할까? 첫 번째 에피소드를 곱씹어보면 함춘수와 윤희정은 서로 좋은 말을 너무나 많이 나눠받고 있다. 그런데 뭔가 어색해 보인다. 함춘수가 윤희정의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부터 그의 말은 진심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함춘수는 열심히 윤희정의 마음을 얻고자 그림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내비치지 않고 좋은 말을 늘어놓고 있다. 조심히 자신을 포장하는 거 같기도 하다. 결국, 첫 번째 에피소드의 결말은 좋지 않은 것 같다. 두 사람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그런데 두 번째 에피소드로 넘어오면서 이야기는 더 재미있게 흘러간다. 첫 번째와 다르게 서로 너무나 솔직해진 함춘수와 윤희정. 언뜻 서로 대화가 잘 이어지지도 않는 것 같다. 중간에 우여곡절도 많은 것 같고 말이다. 거기다 함춘수는 실수의 연발이다. 그의 선택은 정말 최악 이였다. 심지어 술에 취해 옷을 벗는 실수까지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마지막은 뭔가 훈훈하다. 윤희정과 함춘수의 마지막 만남은 둘의 관계가 결코 깨어지지만은 안았음을 볼 수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와 두 번째 에피소드는 어찌 보면 극단적이고, 어찌 보면 작위적일 수도 있겠지만, 실상 저런 패턴은 우리의 삶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는 항상 바른 선택을 위하여 노력한다. 그리고 선행한 많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어떤 선택을 하면 어떻게 남에게 비취어지는지도 학습이 되어있다.(또는 어떻게 하면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학습을 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보면 그런 흔한 남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성 앞에서 그녀에게 마음에 드는 방향으로만 선택지를 고른다. 왜일까? 그래야 여자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예측 또는 그렇게 학습되어진 우리의 선택이다. 그런데 그건 대게 나의 진심과는 동떨어질 때가 대다수이다. 그럼에도 남자는 열심히 맞춰준다. 그렇게 좋은 관계를 이어가지만 이상하게 끝이 무미건조해지는 관계가 흔히들 있지 않은가? 우리는 경험되어지거나 학습되어진 것을 바탕으로 세운 계획안에서 좋은 그림을 예측하며 인연을 찾으려하지만 결국,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나의 계획보다는 알 수 없는 상황들에 의해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왔다. 내가 생각한 삶의 모형들도 결국, 그렇게 흐르지 않고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온 경우도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가 보여주는 모습은 그런 우리의 흔한 삶의 패턴을 아주 작은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 아닐까 한다. 물론, 두 번째 스토리도 마찬가지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을 만나고 때론 그것이 나에게 좋은 결말과 때로는 좋은 인연을 가져다주기도 하지 않은가? 악연이 갑자기 나에겐 둘도 없는 단짝이 될 수도 있고 뭐 그런 거 아니겠는가?

       최고의 선택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은 언제나 모질게 구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찌 다시 생각해보면 그 선택의 주체가 정말로 진실 되게 자신이었을까? 라는 질문이 든다. 위에서도 언급하였지만, 학습되어진 우리의 본능은 우리를 정말 아름답게 이끄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함춘수가 영화 속에서 GV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서 함춘수는 말에 대하여 무의미성을 강조하며 화를 낸다. 또한 그 사회자를 싫어했던 이유도 잘 곱씹어보면 포장된 말이 너무나 많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던지면서 그럴싸한 느낌만을 준다. 그리고 그런 껍데기뿐인 선택지 속에서 우리는 정말 소통이 되어 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감정의 솔직함이 어쩔 땐 분란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길게 생각하여 본다면 그 사람과 나의 소중한 소통을 위한 하나의 과정일 지도 모르겠다.

       이리 선택한들 달라질 거 없고, 저리 선택한들 달라질 거 없다. 그러니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솔직해지자. 좋아지려고 노력한다면 오히려 그것은 나에게 무의미로 돌아올 것. 좋다고 느낀다면 좋다고 하면 되고, 싫다고 한다면 싫다고 하면 된다. ‘삶의 선택이라는 기로에 선 당신에게 보내는 무의미는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렇게 한다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고, 저렇게 한다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러니 솔직한 삶을 살자. 어찌되었던 내가 중심이 되어 솔직한 선택을 하는 내가되자. 그것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삶의 진리인거 같다.

     

     

     

     

    - 마무리

       홍상수 감독이 존재하기에 한국의 영화가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내 입으로 당차게 말하기는 조금 부끄럽지만,(내가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견문을 지녔다고 생각되어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난 이 감독이 한국영화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만난 이 감독의 생각은 나의 개인적 소견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그가 가지고 있는 내적인 표현력에는 큰 가치를 내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초심을 잃지 않는 감독의 촬영방식과 화면구성은 어떻게 보면 영화에 대한 희망이요, 또 어떻게 보면 영화 본질에 자연스럽게 의지하여가는 아주 영화인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점점 발전해가는 영화산업 시스템과 기술발전아래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내는 용기는 언제나 닮고 싶은 롤모델이다. 물론, 본인은 용기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자신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일수도.......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란 1초의 24프레임이 흐르는 하얀 도화지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기술이 발전되면서 도화지의 질은 날이 갈수록 좋아진다.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도 모를 정도이다. 그러나 그 하얀 도화지 위에서 우리가 진실 되게 소통되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우리에게는 언제나 카메라가 주어져 있었다. 그러나 점점 질이 좋아져가는 상황 앞에서 나 또한 그 도화지의 질만을 따라간 경향이 있다. 아무리 도화지가 실크 같다고 하여도 잘 재봉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냥 평범한 천조가리라고 한들 내가 잘 재봉하면 멋진 옷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란 그냥 평범한 천조가리의 잘된 재봉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원재료가 좀 질이 낮다고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질이 낮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변치 않는 홍상수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어진다. 언제나 지금과 같이 스크린에서 만나고 싶다. 그때는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기대가 되어 진다.

     

     

     

    사진출처: 다음영화

    Written by 두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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