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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느 딜망, Jeanne Dielman, 1975作>
    문화예술 감상기/Movie Talk 2016. 2. 7. 22:42

    잔느 딜망

    (Jeanne Dielman, 1975)

     

    Film by

    Chantal Akerman

     

     

    서론_

       시네마테크와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잔느 딜망>을 보게 되었다. 벨기에의 이토록 실험적이며 깊은 감성을 지닌 감독이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극장을 나온 것 같다. 완벽하게 내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지만 그와 별개로 대단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본론_

    * 루함의 미학 *

       약 3일간 일어나는 잔느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시간의 압축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편집이라는 독특한 묘약을 스스로 거부함으로서 카메라 본연의 박제기능을 연출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흔적이 다부지게 드러난다. 그래서 런닝타임도 약 3시간 40분가량이 나온 게 아닐까 한다. 그런 샹탈 아커만의 노력은 관객이 지루해하도록 유도한 것이라는 점에서 대담하다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는 질문할 것이다. '지루한 영화가 좋은 영화인가?' 내가 지금부터 말하고자하는 바는 감독이 어떤 의도로 우리에게 지루함을 선사했냐는 것이다.

       잔느의 3일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여성이 가지고 있는 어떤 굴레이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것은 어머니라는 키워드일 것이다. 어머니가 내가 없는 사이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 지 아커만의 카메라는 아주 집요하게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떤 가공도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가공이 들어가는 순간 어머니의 하루는 정말 별거 아닌 걸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 잠에서 일어나 자신의 몸을 씻고, 아들의 운동화를 준비하며, 밥을 해나가는 등의 모든 장면이 아주 노골적으로 디테일하게 하나하나 드러나야 얼마나 반복되고 고된 과정인지를 관객들은 느낄 것이다. 이 과정은 지루할 수밖에 없다. 긴 시간동안 한다는 일이 반복되는 행동들이기 때문이다.(약간의 변화가 있긴 하다. 하지만 잔느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간다.) 그리고 그렇게 카메라가 잔느를 그려야하는 이유는 아주 명확하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성이 어머니라는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련의 과정들은 저런 지루함이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아커만은 그것을 날것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여기서 편집이 들어가 가공의 과정을 걸쳤다면 이 영화가 제작되어지는 것이 무의미해진다. 감독이 의도하는 바가 전혀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커만의 의도는 잔느의 무료와 반복을 관객들에게 생으로 보여주고 싶음에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지루한 것이 당연하며 이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진실과 마주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진실과 마주하는 과정에 대하여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런 것이다. 우리는 같은 시간에 나와 떨어진 누군가의 삶을 바라보지 못한다. 우리는 일인칭시점으로 내가 겪은 것만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속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언제나 여성이었다. 특히 어머니라는 우리 시선 밖의 존재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머니라는 위치의 삶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른다. 동시간을 살아가지만 몸은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녀의 존재는 항상 밖에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토양을 가꾸어주는 여성의 노동은 언제나 가려지기 마련이고 그 누구도 조명해주지 못했다. 그러나 아커만은 그 부분을 조명하며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영화를 보고 지루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루함을 마이너스의 요인으로 즉, 시간을 낭비했다는 식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왜 지루했는지를 가만히 생각하여 본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그 고된 노동에 대하여 뜻 깊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아커만의 의도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여성이 가지는 굴레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무료함. 그러나 또 한편으로 아들을 위해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것을 묵묵히 해나가는 모습. 이 영화가 나에게 선사한 것은 여성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에 단한 번도 시선을 두지 못했다는 나를 향한 부끄러움이었다.

     

     

    * 수동성 *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대사는 잔느가 아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그녀는 구둣가게의 아저씨와 대화를 하던 중 이런 대사를 한다. “애가 아빠 닮아서 말이 없어요.” 그녀가 툭하고 뱉은 이 대사는 마치 남성의 사회적 위치가 대물림되는 느낌을 받게 한다. ‘닮았다라는 단어는 무언가 여성을 계속 지배하고 있는 어떤 굴레가 연속적으로 내려오고 있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어머니의 위치에서 아들을 위한 삶을 살지만 그녀는 무료함을 꾹 참는 모습이 계속 나온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루의 반복된 행동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약간의 감정변화를 보여주며 미묘하게 행동이 달라진다. 첫째 날 구두를 닦을 때와 다르게 둘째 날에는 구두 솔에 힘을 주어 하기 싫은 감정을 내뿜는다. 그러다 구두 솔을 놓치고 신경질적으로 주워 다시 닦는다. 이런 장면에서 그녀는 벗어나고 싶은 감정을 꾹 눌러 참는 듯하다. 그러나 어머니의 위치에 돌아와 다시 일을 이어간다.

       여기서 굉장한 모순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의 상황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런 현상은 어머니라는 위치가 주는 어떤 고정관념일 수 있겠다. 좋은 어머니란 자식을 책임지고 키워나가는 것이라는 굴레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잔느의 아들은 부족함 없이 모든 뒷바라지를 받으며 자라간다. 그런데 이런 남자가 자란다면 미래에 남성과 여성 사이에 관계 변화가 있을 수 있을까? 그냥 닮아가게되는 것이다. 아커만은 여성의 가정적 모습에서 이런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잔느에게 벗어나고 싶으면 제발 벗어나!” 라고 외치는 듯 잔느의 모순된 점들을 카메라로 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남성의 강압성만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의 수동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위에서 느끼는 지루함의 미학은 여성의 수동성에 대한 숨 막힘 일수도 있겠다. 어찌되었건 두 양면성을 바라보며 정말 중요하게 느껴야 할 것은 이제 저런 숨 막히고 지루한 상황에서 여성을 해방시키는데 힘일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만약 남성이라면 더더욱 앞장서서 나서길 바라는 바이다.

     

    * 아쉬운 점 *

       마지막으로 약간의 아쉬움을 표하자면 잔느가 남자를 살해하는 장면이다. 물론,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였는지 알겠다. 하지만 너무 심플하게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녀가 가위를 드는 감정까지 너무나 잘 쌓아 올라왔지만, 느닷없이 가위를 목에 꽂아버리는 것이 후다닥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폭풍과 같이 그녀의 감정이 치고 올라갔다가 다시 잠잠해지는 느낌은 좋았다. 하지만 조금 더 분노가 표출되었으면 어땠을까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녀가 느끼는 권태가 극에 달했을 때 그 정도 밖에 안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무리_

    * 경험해야하는 작품 *

       필자가 바라는 것은 직접 이 영화를 경험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경험되어져야 할 영화이다. 그리고 경험을 바탕으로 쌓아 올라가야하는 장면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경험을 배제하고 이 영화를 이야기할 수 없다. 지루하지만 기대와 흥미를 내려놓고 지그시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보자. 그리고 알게 모르게 얼마나 우리가 여성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는지를 느껴보자. 어느 순간 이 영화는 나의 자화상이 되어 어머니를 떠올리게 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 아커만으 통해 느끼는 작가감독 *

       영화가 재미있어야 좋은 작품이라는 편견을 깨야한다. 예술은 때론 우리를 괴롭힌다. 아름다운 것만을 추구하며 음지를 무시하고 새로운 시선을 차단시켜버린다면, 우리는 너무 한정된 우주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예술은 다수가 보지 못하는 곳에 시선을 두고 그 감정을 최대한 이끌기 위해 노력한다. 작가의 노고는 여기에 있다. 그래서 예술이란 마냥 재미있고, 마냥 산뜻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가치는 있다.

       아커만이 여성의 보이지 않는 부분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면 우리는 언제나 불평등 위에서 세상을 그냥 그렇게 살고만 있을 것이. 천부인권설에 베이스를 두고 민주주의사회가 지금껏 이어져왔다면, 예술가는 인간다움을 위해 음지를 바라보며 그들의 감정을 최대한 끌어내야 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감독이란 그런 사람들이다. 각자 삶속에서 모순을 발견하고 그것에 대하여 끝임 없이 질문을 던지고 표현해 나가는 작업. 그것이 작가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Written by 두루미

    사진출처: 다음영화

     

     

     

     

     

    P.S.

       그녀의 히스토리를 보면 영화를 찍기 위해 일을 하며 스스로 돈을 모았던 내용과 자신이 직접 배우로 출연해가며 영화를 제작한 이야기가 있다. 그런 그녀의 삶을 읽으며 내가 느낀 건 아커만은 진정 자유로이 자신의 영화를 찍으며 왔다는 것이다. 모순의 시선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자본에서 독립되는 방법을 배워야함을 감독의 삶을 통해 느낀다. 나도 앞으로 그런 제작방식에 대하여 끝없이 고민하는 시간을 앞으로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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