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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 누구에게나 존재하는문화예술 감상기/Movie Talk 2015. 8. 27. 14:42
<나의 어머니>
Film by Nanni Moretti
-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
서론
이 영화를 보고자 마음이 먹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끌리는 작품들의 제목은 항상 어디에나 존재 할 수 있는 '단어'들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작품들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발견한 것은 내 인생에 있어 감명깊게 본 영화들의 제목은 가장 평범한, 항상 내 옆에 존재하는 그런 단어들이었던 것 같다. 이 영화의 제목도 나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였다. '어머니'라는 그 단어 한마디로도 너무나 많은 것들이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누구에게나 적용시킬 수 있는 상황을 가지고 더 깊게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감독이 영화로 보여주는 표현들의 집합의 결과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 결과는 우리가 누군가를 보낼 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의 솔직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솔직함은 감독의 담대한 연출력으로 관객에게 다가오고 있음이 틀림없다.
어머니와의 이별을 다루는 영화들의 대부분은 강한 감정선을 드러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와는 조금 다른 접근성으로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다. 그것은 떠나보내는 고통을 감당해 나가는 개인 즉, '나'에게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리고 감독의 강한 주관적 개입보다는 캐릭터가 실존하여 프레임 속에 닥친 상황에 자연적으로 반응한다. 감독은 카메라를 통해 그 자연발아적인 감정들을 포착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MSG도 첨가하지 않았다. 그러다면 본론으로 넘어가 감독의 연출과 그 표현들이 가져다 주는 결과물은 어떤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본론
- 평범한 소재
소재를 선택함에 있어 이 감독의 선택은 언제나 어긋나지 않는다. 그건 전작인 <아들의 방>에서도 그랬다. '자식'이라는 존재는 '나'에게 너무나도 근접한 실체이다. 이와 마친가지로 <나의 어머니>도 그렇다. 이런 일반적인 존재에 대하여 진지하게 접근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굉장히 지루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옆에 항상 존재해 있는 어떤 존재들이 우리가 깊게 바라보지 못해 놓치는 경우는 너무나 허다한거 아니겠는가? 이 감독이 선택하는 소재의 접근성은 그런 것에 대하여 언제나 꼬집어주고 있는 듯 하다.
그리하여 너무 평범해보이는 소재에 대한 감독의 선택은 단지 평범하다는 평가로 끝나서는 안되는 것이다. 평범한 소재에 대하여 가치를 살려주는 감독의 소재 선택은 언제나 탁월한 선택이 되었다. 창작이란 무조건 새로운 것만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평범 할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일 수도 있다. 무조건 새롭고, 독특한 것을 찾아나서면 뭐하겠는 가? 그 표현의 파편들이 모이고 모여 이루는 것이 아름다운 도자기가 아닌, 비율 안 맞는 깡통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평범한 소재만 못한 것이다.
난니 모레티 감독은 <나의 어머니>를 통해서도 평범한 소재에 대한 접근성을 새롭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감독 본인이 가지고 있는 사실주의적 정신에 입각한 것이겠다.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소재. 그것을 가지고 인간적인 면을 포착한다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 있어 가장 현실적인(사실적인) 선택일 것이다. 난니 모레티 감독은 그런 소재에 관심이 깊은 것이다.
- 색다른 해석
어머니를 보낸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사용되어진 스토리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르다. 그건 누군가를 보내는 마음을 아주 진실되게, 정말 MSG첨가 없이 표현하고 있는 것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런 표현은 시간순의 배열로서만 사실주의적인 면을 보이는 것이 아닌, 인간의 내면을 시간순의 '재배열'로 표현함으로서, 시간의 순차성이 꼭 사실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역설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영화는 마르게리타라는 주인공의 시간순으로 진행되어가는 것 같지만, 중간 중간에 과거의 장면들이 끼어든다. 이는 시간을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사실적 표현의 역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삽입들이 보는 사람에게는 전혀 튀지 않는다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 '내적인 마음의 사실성'이 그 주춧돌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보내야만 하는 운명과 마주 했을 때,(그것은 인생의 굉장한 슬픔이자 충격일 것이다.) 실상 내가 현실에 있는가하는 착각에 들기도 한다. 불안속에 우리는 잠을 청하게 되고, 그 속에서 보여지는 내 자신의 치부들은 모락 모락 나의 현실세계에 영향을 준다. 그것이 '나'인지, 지금 존재하는 것이 '나'인지. 그건 정말 알 수 없는 패닉의 상태이다. 상실의 아픔을 아는 분이라면 고통을 마주하는 인간에게 벌어지는 자연발아적인 정신상태에 대해 더욱더 깊게 이해하실거라고 본다. 마르게리타가 영화속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이 이런 자연 발아적인 현상들이다. 인간은 누군가를 보내야하는 슬픔 앞에서 시간순의 현실적인 삶 보단, 과거의 잘못들이(영화 속에선 마르게리타가 어머니에게 상처 준 행동들) 나를 지배한다. 이렇게 영화 속 흐름은 마르게리타가 현실을 살아가는 시간순 위에 재배열되는 과거의 파편들이다. 이 영화가 절대로 튄다고 생각되어지지 않는 점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이다. 관객은 이 영화의 시작부터 그녀의 감정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감정이 시간순으로 변해가는 것을 목격 할 뿐이지, 사건의 시간적 논리성에는 주목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이는 현실적으로는 시간순의 믹싱이지만, 감정적으로는 시간순에 의한 정확한 흐름이다. 이렇하기 때문에 이 영화가 초현실적이다라고 느껴지지 않으며, 그런 영화라고도 정의내리고 있지 않는 것이다.
- 영화와 현실의 간극
감독 본인의 페르소나와 같은 마르게리타를 통해 감독은 영화와 현실의 간극에서 갈등하는 본인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그건 마르게리타가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에서 너무나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녀의 독백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는 점은 사실주의의 영화를 한다는 본인 조차도 현실이 무엇인지 재대로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아주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본다는 것. 사회가 품고있는 어떤 문제점에 대하여 깊게 알고 있다는 것. 어찌보면 감독 스스로도 영화가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듯하다. 사실주의적인 영화를 찍고 싶고, 실제로도 그런 작업을 하는 감독 본인은 과연 얼마나 현실을 알기에 그것을 그릇에 담고 있는 것인가? 이건 창작자가 가지는 가장 큰 괴리감일 것이다. 하지만 마르게리타나 난니 모레티 감독이나 조금씩 전진해 간다. 계속해서 영화가 주는 사실적 사유를 놓지 않는다. 그것이 중요하다. 그 사유를 놓지 않는 다는 것은 점점 영화가 현실을 대변 할 수 있는 어떤 궁극적인 포인트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겠다. 쉬운 일은 아니다. 현실을 담는 다는 것은 쉬워보이지만 실상 정말 어려운 작업이다. 이것은 아주 민감하고 섬세한 부분이기에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자극적이지 않기에 관객에게 얼마나 매력을 줄 수 있을 지도 미비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정신을 저버려야하는가? 영화답다고 흔하게 말하는 영화적 기법을 차용해 가면서 '영화는 영화구나'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그릇에 안주하고만 있어야 하는 것인가? 그것만이 난무해서는 안되는 것 같다.(물론, 그런것도 필요하지만) 영화가 영화로서 존재하고 그것의 문법을 다시금 써나가나는 것은, 이 감독이 영화와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끝없이 사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사실에 점점 다가가는 영화사적 발전의 기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는 현실과 작품의 간극 사이에서 사유만이 있는 것인가? 다시 넓게 생각해보면 사유도 있고, 그것에 대한 어떤 해결점도 던져진다고 생각한다. 마르게리타의 대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캐릭터도 있지만 그 옆에 본인도 있어야 한다." 이 말은 단순히 마르게리타라는 감독의 철학 같지만, 더 넓은 측면에서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영화의 사실주의적인 완성은 영화 그 자체로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감독의 주장이 보인다. 그건 다시 말해 '영화가 있지만 그 옆에 관객 본인도 존재해야 한다.'라는 말과 같다. 이는 영화가 사실주의를 완성시키는 포인트는 결국 영화와 관객의 경험이 만났을 때라는 것이다. 맞는 것 같다. 영화의 요소를 연극처럼 따지지 않지만, 난 관객이 함께 가야함을 느낀다. 영화를 감정적 존재가 없는 곳에 틀어도 상영은 상영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영화적 사실은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보는 사람의 경험이 없다면, 영화의 감정적 연결고리도 없는 것이다. 그건 사실적인 측면의 단절이나 마찬가지다. 사실은 내 경험이 함께 수반되어야 사실로 다가온다. 그런데 그런 관객이 영화 옆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영사되는 빛에 불과하다. 난니 모레티는 영화와 현실의 간극에서 끝없이 사유한 끝에 아주 명쾌한 해답을 들고 왔다고 생각한다. 잊지 말아야 하는 정신인거 같다. '영화도 있지만 그 옆에 본인도 있어야 한다.'
마무리
-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본론에서 영화가 보여주는 표현들과 이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시간의 재배열 또한 사실적인 느낌을 준다. 그것은 또 한편으로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한 진실된 표현인것 같다.
마르게리타의 심적인 변화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소재에 대한 존재성 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에 대한 존재를 이야기한다고도 할 수 있다. 감독은 실상 촉감적인 현실의 사실주의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사실주의에 가까운거 같다. 내면의 사실에 근접한 그의 감각은 시간의 재배열이 주는 '영화다!'라는 느낌보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실적으로 이해하는 '그래 맞아.'라는 느낌을 준다.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우리는 눈으로 보지 못했던 점을 감독은 카메라를 통해 포착했다. 그리고 그런 접근성 또한 사실주의에 가깝게 접근해 있음을 우리는 느낀다. 떠나가는 마르게리타의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우리가 굵은 눈물을 흘리는 것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감정'의 마침표를 찍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가 신파적인 표현에 반하여 서술하고 있지만, 그녀의 감정을 지루하지 않게 따라가게 하는 힘은 눈에 보이지는 않는 진실을 감독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아들의 방>이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내는 과정이었다면, <나의 어머니>는 모두가 공유하는 경험을 표현하는 일이었다. 항상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가능하다면 점점 아름답게......."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그리고 공유되어지는 경험에 대한 표현. 이 감독이 앞으로도 쭉 이런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가 되어진다. 우리에게 또 얼마나 큰 감동을 줄런지.......
Written by 두루미
사진출처: 다음영화
P.S. <아들의 방>도 보았으니 <나의 어머니>와의 유사성을 살피는 글을 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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