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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포매니악 Vol. 1 감독판 Nymphomaniac Vol. 1문화예술 감상기/Movie Talk 2015. 6. 2. 14:54
님포매니악 Vol. 1 감독판
서론-
제목부터 굉장히 자극적인 <님포매니악 Vol. 1>.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마치 험난한 탐험을 떠나는 듯 한 도전작으로서 이미지를 잡은 것 같다. 그러나 나에게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으로서 다가왔다. 그 이유는 라스 폰 트리에라는 감독의 작품이라는 어찌 보면 굉장히 단순한 점 때문이었다.
'도그마95선언’을 시작으로 항상 이슈를 만들어 냈던 덴마크의 감독 라스 폰 트리에.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영화를 가지고 이런 것도 가능 하구나!’라는 탄성을 지른다. 그만큼 새로움을 항상 만들어내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표현력을 이 감독이 가장 잘 활용하고 있다고 본다. <님포매니악 Vol. 1>도 나에게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영화에서는 과연 어떤 표현력으로 그의 감정이 느껴질까 하는 것이 너무나도 기대가 되었다. 작년부터 이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마땅히 이 영화를 하는 극장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아트나인(극장) 시네프랑스 섹션에 이 영화가 걸렸다.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 영화를 보러 갔다.
본론-
지식과 관객을 이어주는 연출력
샐리그만과 조의 대화로 영화는 진행된다. 조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이며, 그 대화 속에는 많은 은유와 종교, 철학, 문학 그리고 음악까지도 섞여있다. 이런 긴대화가 주를 이루는 영화는 지루해 질 수 있다는 것이 큰 단점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대화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는(어쩌면 재치 있는 농담까지 섞인)장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캐릭터들의 말을 마치 종이에 그림을 그려 누군가에게 설명하듯 보여주는 인서트 장면들이다.
첫 챕터에서 조가 남자사냥을 하는 모습을 셀리그만은 낚시에 비유한다. 셀리그만의 입에선 낚시에 대한 전문용어와 방법들이 나오는데 영화는 말만하지 않는다. 실제로 낚시하는 장면이 나오고, 미끼가 물속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장면까지 대사 중간에 인서트 된다. 이뿐만이 아니라 다섯 번째 챕터인 오르간 학파에서는 화면분할을 써가면서 조가 남자와 가진 관계를 베이스음, 중음, 정선율로 비교하면서 나눈다. 심지어 배경음까지도 그 위치에 맞는 톤의 선율이 나온다. 또한 피보나치수열이라 던지, 악마의 음정 등 문학, 예술, 종교, 수학에서 어려운 단어들이나 개념이 나올 때 마다 그것을 종이에 그림 그려 설명하듯 인서트 화면에 보여준다. 그때 화면에 여러 가지 장난들을 많이 친다. 숫자를 표기한다던지, 화면을 분할하고, 스톱모션을 주는 등 화면에 표현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사용한다. 그리고 그런 시도들이 관객이 대사를 이해하기 쉽게 만든다. 물론, 스토리 전체를 다 쉽게 이해하게 만들진 않는다. 하지만 셀리그만의 입에서 나오는 어려운 대사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 영화를 좀 더 폭넓게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은 굉장히 긍정적인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길고 긴 대화의 지루함을 없애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보고 있다.
편집이 많이 사용되어졌다는 측면으로 본다면 이 감독이 도그마95 선언을 했던 그 사람이 맞아?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도그마의 규율에서 자유로워진 감독의 연출은 관객들에게 어려운 개념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이 부분이 주는 의미는 형이상학적인 어려운 이야기라도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화를 통하여 관객들이 이에 접근하기 쉽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어렵다고 생각되어지는 심도 깊은 영화의 경계를 무너트릴 수 있는 연출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도 캐릭터들의 대화만 보면 굉장히 이해하기 힘든 단어와 개념들이 많이 나오는 심도 깊은 영화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재미있어지는 것은 이런 연출력과 편집들이 있기에 위트 있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비록 이 영화가 많은 노출과 상상할 수 없는 발칙한 장면들로 관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셀리그만과 조의 대화의 인서트 장면들은 아마 부담 없이 재미있게 다가 왔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 ‘노출이 너무 심하다.’라고 말하는 관객은 많이 있지만, 고리타분하다고 말한 관객은 아마 드물 것이다.(뭐........ 대부분 어렵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지만)
오르가즘 ≠ 사랑
오르가즘과 사랑이 항상 같이 가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에서 조는 항상 오르가즘을 느끼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이 사랑은 아니었다. 제롬과 만나는 모습을 보면 그녀에게 무엇이 필요했는가가 보여 진다. 사랑을 부정했던 그녀가 사랑을 알았고, 섹스는 사랑 없이 더는 아름다울 수 없음을 살짝 느낀다. 완벽하게 느낀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그녀는 사랑에 대하여 굉장히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니까. 영화가 마지막으로 흐르면서까지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래, 사랑이 필요해요!”라고 말하진 않았다. 그냥 “그런 듯 해요.”라며 말끝을 흐리는 걸 보니 아직도 자신의 신념이 확실하게 무너지진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녀의 모습은 굉장히 이성적이다. 섹스라는 것도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이성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섹스를 어떤 도구로서(?)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그냥 나의 즐거움을 위한 도구. 맞다. 그녀는 섹스를 누구와의 관계가 아닌 자신의 만족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자, 수단으로서 생각하는 것이다. 성관계에 대해 굉장히 이성적으로 접근한다. 그런 그녀의 성관계는 그리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가지는 장면에서 그녀의 표정은 굉장히 차갑다. 아무 감정이 없어 보인다. 난 그 장면이 너무나 슬퍼보였다. 좀 역설적이긴 하겠지만, 느끼지 못하는 관계란 복잡한 연애관계보다 더 비참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그녀는 소리친다. “아무 느낌이 없어!” 아무 감정이 없는(사랑이 없는) 관계가 세상에 필요한 것인가? 가장 깔끔하고 내가 상처를 안 입을 수 있는 방법인 것인가? 글쎄, 많은 의문이 드는 포인트이다.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고 오르가즘만이 모든 구멍을 채워주지 않는다. 조는 항상 나의 모든 구멍을 채워달라고 하지만 스스로 잘못된 방식을 택하여 자신의 내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녀의 모습은 굉장히 주도적으로 보이고 때론 차가워 보이지만, 한편으론 굉장히 공허해보였다. 그녀는 그 공허함을 극한의 오르가즘만이 채워줄 거라 믿고 있었다. ‘사랑’은 그녀의 머릿속에 자리 잡히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머리로는 한낮 쓰잘데기 없는 감정낭비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우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절실히 느낀다. 사랑이 없는 관계(오르가즘)는 정말 쓰잘데기 없음을. 그리고 그녀같이 사랑에 부정적인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외로워 보이고, 얼마나 불쌍해 보이는 지를.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마 신이주신 가장 큰 벌이 아닐까 한다.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자. 그런 자는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정말 소리 없는 큰 고통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오르가즘은 그냥 한 부분일 뿐이다. 인간의 한 부분의 구멍을 채우는 단지, 아주 작은 장치일 뿐이다. 그것이 모든 것이 되는 순간, 너무나 불행한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본다. 오르가즘이 사랑을 규정하진 않는다. 오로지 사랑이 오르가즘을 아름답게 빛낼 것이다. 오르가즘이 먼저가 아닌, 사랑이 먼저일 것이다. <님포매니악 Vol. 1>에선 조의 생활을 통하여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이런 포인트를 꼬집어 주고 있다.
라스 폰 트리에의 인물구도
위에서 잠깐 ‘조’라는 인물이 굉장히 이성적인 캐릭터로 나온다고 하였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에서 나오는 어떤 경향을 살펴보면 ‘이성과 감성의 대립’이라는 타이틀을 끌어 올 수 있다. 그 전작인 ‘멜랑콜리아’나 ‘안티크라이스트’에서 나오는 과학적(이성적)인 캐릭터와 그렇지 않은 캐릭터의 충돌과 엉킴이 이 영화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보편적으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캐릭터와 그렇지 않은 캐릭터의 충돌일 수도 있다.
조는 굉장히 똑똑한 여성이다. 주차를 하는 장면이나 의대에 들어가 공부하는 모습들을 본다면 일반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똑똑한 머리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라스 폰 트리에는 이런 부분을 정말 날카롭게 파고든다. 극 이성주의자를 아주 자연스럽게 비꼬는 듯 하기도하다. 결국, 인간은 이성의 의존이 아닌 감정에 의하여 삶을 살아간다. 행복하고 불행한 것은 이성으로 풀어나갈 수 없는 미로이며 안드로메다이다. 라스 폰 트리에는 이 점을 굉장히 영화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이 <님포매니악 Vol. 1>에서도 당연하게 감독만의 알레고리를 느낄 수 있었다.
누구도 보지 못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에 대한 이미지는 너무나도 괴상하게 그려져 나가고 있다. 여성혐오주의자의 나치옹호발언을 한 악마이며, 누군가에게는 변태적인 이미지 일수도 있다. 그러나 난 그가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 가를 느낀다. 단지, 표현이 거칠어서이다. 그리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색정증’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영화의 스토리를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라스 폰 트리에는 이 까다로운 소재를 선택하였고, 그것을 아주 인간적으로 풀어나갔다. 그리고 이런 그의 내러티브는 인간을 사랑했기에 어두운 부분을 조명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라스 폰 트리에는 소수의 상황을 조명하며 역설적이게도 비인간적인면에서 인간적인 면을 발견해가는 과정을 영화를 통해 그려나가고 있다. 조의 모습을 보면 정말 비정상적이다. 하지만 그녀가 제롬을 만나는 과정을 생각해보아라. 점점 무엇인가 느껴가고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기괴하고 충격적인 이미지들이 서론에서 나열되었지만, 본론과 결론으로 갈수록 영화는 점점 무언가를 찾는 인간탐구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님포매니악 Vol. 1>에서는 모호하게 끝나지만 그 뒤가 더 궁금해진다. 조는 너무나 비정상적이었지만 영화가 흐름에 따라 인간적인 매력을 보유하고 있는 인물로 바뀌어 간다. 그녀의 향기가 Vol. 1에서 끊겨버려 아쉬움을 남는다.
우리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하여 제 3자의 삶을(조의 삶) 조명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관객은 영화를 통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볼 때가 있다. 물론, 그것이 잘못이라는 말은 아니다. 어쩔 땐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나에겐 약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터치해 주고 싶을 뿐이다. 나는 카메라가 철저히 제 3자가 되었을 때 우리가 삶을 객관적으로 볼 것이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깊게 느낄 것이라고 본다. 그 객관적인 모습이 비록 인간의 정말 사악한 면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거울삼아 현실을 살아가는 나를 끝없이 견제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나와 다른 상황에 처한 누군가의 삶을 깊게 이해하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감정적 통로로서의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와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평등과 소통을 이루는 것이다. 색정증 환자와 평등하게 소통할 수 있게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영화를 보면서 나는 조를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의 비정상적인 행동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왜 그리 행동했는지에 대한 감정적인 부분이 이해가 되어져 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윤리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가 아닌, 일단 그녀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언젠가 그녀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늙어버린 조가 자신의 삶을 회상하며 점점 변해가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그녀 스스로 말이다. 라스 폰 트리에는 누구도 보지 않는 어두운 부분을 이렇게 조명하며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오물 속에 손을 넣은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오물 속에 가려진 진주를 건져내려면 오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행동은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감독은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희망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고 있다. 그 점이 이 감독이 대단한 아티스트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마무리 -
라트 폰 트리에 감독에 대한 칭찬만 구구절절 늘어놓은 듯하다. 조금 웃긴 얘기일 수 있는데 나는 사실 이 감독의 스타일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너무 고통스럽다. 너무 잔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때문이다. 모든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난 후 감독이 만들어 놓은 조각들이 조화를 이루어 내 머릿속에서 정리되었을 때, 정말 강하게 인간에 대한 희망과 사랑이 느껴진다. 단지, 접근 방식이 가시밭길이라 그렇지 감독이 표현하고자하는 것은 굉장히 궁극점인 포인트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라스 폰 트리에를 미워할 수가 없다.
<님포매니악 Vol.1>은 포스터나 광고의 이미지와는 틀리 게 굉장히 무서운 영화는 아니다. 그리고 그리 야한 영화도 아니다. 영화가 24프레임을 흘려보내는 모든 시간이 가식이 많지 않아 배우들이 정말 편하게도 옷을 좀 많이 벗고 있을 뿐이다. 흠....... 마치 태초의 인간의 모습처럼 말이다.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 영화를 꼭 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전작들도 접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는 미워 하려고해도 미워할 수 없는 감독이다.
Written by 두루미
사진출처- 다음영화
p.s. 우먼 서먼의 출연은 정말 '빅 재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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