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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다> Alive문화예술 감상기/Movie Talk 2015. 5. 28. 21:45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산다>
서론 -
이 영화는 겉표지만을 훑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 핵심을 찌르고 있다.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인 이야기였다면 영화는 굉장히 1차원적인 작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카메라는 인간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있다. 어디서부터 다툼은 시작되고, 어디서부터 의심은 시작되어지는 지. 그리고 시대의 발전과 인간 삶의 가치는 어떤 관계를 보이고 있는 지. 그 모든 것을 조명하며 관객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감독의 이런 폭넓은 시야와 연출력은 이목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본론
- 핵심을 파고드는 영화
현대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영화에서는 정철은 살려고 발버둥 친다. 그를 따라다니는 약간 말이 어눌한 친구는 그에게 자신이 언젠가 꼭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철은 콧방귀를 뀐다. 정철은 친구를 슈퍼마켓으로 끌고 들어가 말한다.
“날 돕고 싶다고? 그러면 저 무를 훔쳐서 나한테 줘”
친구는 하지 못한다. 그러나 정철은 너무나 쉽게 무를 훔쳐서 나오게 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건 이런 거야.”
영화는 비유적으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생존권의 위협을 쉽게 느끼는 시대가 되었다. 기술 발전은 날로 높아져만 가지만, 인간 삶의 가치와 질은 아직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비양심적인 행동을 해야 피해를 안보는 시대가 되었고, 그래야 생존권을 지키는 사회가 되었다. 왜 우리는 이런 링 위에서 살아가는지 의문이 든다. 판을 뒤집을 순 없을까?
그러나 이 영화는 링을 엎어버리는 것에 집중하지 않는다. 아마도 무조건 반항하여 싸운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생각인 것 같다. 이 영화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왜 이 링이 만들어졌는가?’이다. 핵심을 찌르는 것이다.
갑의 위치에 있는 메주사장은 을에게 경쟁을 하도록 부축인다. 능력이 뛰어난 을인 정철은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사용한다. 그것을 사용하여 다른 갑질을 시작한다. 영화는 이런 악순환의 연속을 보여준다. 정철의 모습을 통해 보여 지는 알레고리는 인간에게 끝없는 의심과 파괴를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자세히 생각해보면 영화가 보여주는 뫼비우스의 띠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주변에 너무나 흔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하였다. 영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를 스토리를 통하여 표현하고 있다. 이 영화가 뛰어난 점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개혁적이고, 혁명적인 힘을 가진 영화가 아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한 힘을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영화이다.
- 섬세한 사운드
이 영화를 더 독보이게 하는 것은 사운드의 기술일 것이다. <위플래쉬>같은 음악이 돋보이는 영화보다 사운드가 섬세하다. 바스락 거리는 마른 나뭇잎 소리가 5.1채널의 사운드로 아주 섬세하게 들린다. 정철이 도끼질을 하는 숨소리마저 마치 내 앞에서 숨 쉬는 거 같이 들린다. 이런 사운드의 섬세함은 영화를 한층 더 사실적으로 다가가게 한다. 영화를 보고난 후 느낀 것은 음악영화만이 사운드가 좋아야 한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주의적인 극영화에서도 사운드는 섬세해야 한다. 사람의 소리라는 것이 있다. 뼈마디가 움직이는 소리, 숨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 바람소리 등 그 모든 요소들이 아주 섬세해질 때 영화가 더욱더 사실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하여 느끼게 된다. 박정범 감독님은 현장의 소리를 아주 리얼하게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다. 사운드 후반작업은 아주 뛰어났고, 그 표현력은 영화의 내용을 더욱더 부각시켰다. 이것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기술력의 힘인 것 같다.
- <밀양>과 <산다>
이창동 감독님의 <밀양>과 박정범 감독님의 <산다>를 같이 비교하여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창동 감독님의 <시>에서 조감독을 지낸 박정범 감독님은 이번 영화에서 밀양과 유사한 장면을 많이 보여준다. 무너진 집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잔잔하게 카메라에 담은 것이나, 영화 마지막 장면에 정철이 현관문을 달아줄때 꽃 뒤로 빛이 들어오는 장면등은 <밀양>에서 자주 등장하는 빛이랑 무언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스토리는 두 영화 다 굉장히 우울하다. 그러나 이미지로 끊임없이 한줄기의 빛을 보여준다. 세상에 아직은 빛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직 희망이 있다는 의미일까? 그건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분명 두 영화는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면서 끝없이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두 감독님의 스타일은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마무리 -
영화의 포스터나 문구가 우울한 분위기를 뿜고 있다. 그래서 보시는 것을 약간은 망설이시는 분도 계신 거 같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는 굉장히 희망적인 영화이다.
자본이 다인 것 같지만, 실상 영화를 통하여 보여 지는 세상은 자본으로도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수두룩하다. 정철은 그런 아이러니 속에서 상처받으며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결국 누나를 기다린다. 자본의 구조에 상처받은 영혼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너무나 많지만, 상처가 상처를 보듬어주듯이 정철은 끝내 누나를 기다리게 된다.
"삼촌, 엄마 올까?”
"엄마가 수도 없이 나갔지만 안 돌아온 적 있어?”
"없어.”
"그럼 언젠간 돌아오는 거야.”
극중 대사처럼 영화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것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언젠간 집나간 누나처럼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희망을 품고 있다.
세상이 너무나 어두운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간다.’ 여기서 끝낸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도 않고, 더 나아지지도 않다. 누군가를 끝없이 미워하고, 끝없이 착취한다하여 더 행복하지도 않다. 그저 ‘누나’가 다시 오기만을 희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작은 빛의 씨앗을 주고 있다. 이미지를 통하여 끝없이 외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
Written by 두루미
사진동영상출처- 다음영화
p.s. 이 영화를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의 <윈터슬립>이나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과 함께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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