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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일, 시저!> 이야기는 계속 된다
    카테고리 없음 2016. 4. 17. 14:56

    <헤일, 시저!>

    - 이야기는 계속된다 -


    Film by Coen Brothers

     


       웃음이 나오지만 뒤끝이 쓰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영화이면의 상황들은 어쩜 이렇게 가슴 아플까? 이 영화는 그야말로 촌철살인그 자체이다.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이 예찬과 희망이 아닌 조소(嘲笑)’이다. 장르는 페이크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속임수는 영화가 주는 환상 그 자체를 비웃고 있는 듯하다. 언론, 영화제작사,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비도덕함, 스타라는 이면에 보여 지는 추한 모습들. 이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비춰지며 프로듀서인 매닝스의 마지막 희망찬 모습조차도 언발란스하게 관객에게 다가온다. 내레이션에서 나오는 이 이야기는 계속 될 것이다.’라는 말은 희망찬 우리의 미래를 제시하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겠으나, 상황과 구성을 다시 자세히 생각하여 보면 2016년이 된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숙제하나를 주는 느낌이 강하다. 영화가 보여준 많은 질문의 이야기들은 <헤일 시저>의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더라도 계속 될 것이라는 점에서 관객에게 이 영화는 계속 ING일 것이다.




     

    할리우드의 황금기 -

       할리우드의 무궁한 발전의 배경은 바로 탄탄한 스튜디오 시스템이었다. 매닝스는 그런 스튜디오 시스템을 잘 운영하고 있는 프로듀서이며, 당시 프로듀서들이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어떻게 이끌어갔는지 그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그 모습이 매우 즐거워 보이지는 않는다. 배우의 이미지를 위해 그는 아주 딱딱하게 그들을 대한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면 폭력도 서슴없이 한다. 마치 공포정치를 하는 듯 배우들을 시스템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더 웃긴건 배우들도 그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큰 성공을 이룬 배우는 그에게(스튜디오에게) 빚진 게 많기 때문일 것이다. 거대한 영화산업의 구조는 한 배우의 흥망성쇠를 간단하게 조정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들도 자신의 성공을 지키려면 그 시스템 안에 존재해야한다. 모든 언론도 이 시스템 안에서 이야기가 돌아간다. 많은 독자들을 얻으려면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기자들은 스튜디오 주변을 서성거린다. 매닝스와 기자(틸다 스윈튼)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면 정말 아이러니하다. 하나의 가십을 가지고 서로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론 서로 협조하는 모습도 나온다. 협상도 가능하다. 그 속에서 진실은 언제나 왜곡이 된다.

       시스템이란 것이 왜 생겨난 것일까? 그 항목들을 세세히 분석하여 본다면 투자대비 손해를 최대한 적게 주기위한 최고의 방법들이다. 사실 이 부분을 따지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다. 돈을 투자한다는 개념은 원금회수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부를 기대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자본주의의 시스템이다. 손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 절대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드는 질문은 작가라는 측면이다. 이런 시스템 안에서 작가라는 단어와는 이별을 해야 한다. 작가란 고유의 스타일을 지닌,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표현법이 있어야한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 안에서 작가의 표현은 흥행이 안 된다는 이유로 아주 단순하게 거절당하기 십상이다. 사회주의 집단을 작가의 집단으로 구성한 감독의 의도는 이런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성공한 작품의 이야기를 만든 작가들은 언제나 초라한 모습을 지닌다. 물론, 부를 위해 그들이 글을 써나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이 현대의 잘 구축된 시스템 안에서 이렇게 박해를 받아야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생기게 된다. 감독이 재미를 위해서 작가들의 사회주의 집단을 만든 것이 아니다. 이는 감독의 메타포가 강하게 들어간 설정이다.

       할리우드 시스템과 작가의 관계. 그리고 사회와 작가의 관계. 이런 상황 설정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이해관계의 충돌을 통해 강한 의구심이 우리에게 남겨지게 된다. 작가란 무엇인가? 작가의 가치는 또 무엇인가?

     





    코엔형제다운 -

       영화가 끝나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역시 코엔형제 작품이네!’ 그들이 보여주는 영화적 의의는 무엇인가? 그 전작들을 둘러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에게 화면구성의 독특함은 딱히 없는 느낌이었다. 자연스럽고 보편적 문법이 잘 적용된 편집구성으로 사실 여느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와 차이점이 없어 보인다. 어찌 보면 아주 할리우드다운 장면구성과 미쟝센들인 듯하다.(특히 5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 분위기를 잘 구현한 듯하다.)

       그런데 그들의 영화는 뭔가 다르다. 할리우드다운 겉 포장지이지만, 까보면 정말 너무나 다르다. 난 이 부분을 계속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고 나서 나온 결론은 이것이다. ‘50년대 할리우드 분위기를 일부러 가져왔다. 이는 그 시대의 동경이 아닌 그 시대에 대한 조소(嘲笑)를 만들기 위함이다.’ , 그 황금기적인 겉표지를 가져오고 그와 상반된 스토리를 넣음으로서 둘을 충돌시키는 것이다.

       코엔형제의 스토리라인을 살펴보면 그 중심에는 자본에 대한 의구심들이 많이 들어있다. 하지만 배경과 표현 방식은 자본의 성공을 이룬 50년대를 그대로 그려놓았다. 이는 그 당시의 존경심과 코엔형제의 물음을 충돌시기는 지점을 형성한 것이다. 성공한 시대 이면의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 50년대를 표지로 붙인 것일 뿐이다. 이 충돌의 효과가 관객들에게 큰 물음을 던지게 한다. 아름다울 거 같던 한 시대를 코미디 또는 스릴러로서 비꼬고 있는 코엔형제의 스타일은 마치 베르너 라이너 파스빈더가 <사랑은 죽음보다 차갑다>에서 보여준 할리우드 형식만을 가져온 느낌이다. 형식은 그저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장치에 불과하다. 그 라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계속 씁쓸한 무언가를 맛보게 되고, 기대한 것과는 다른 플롯의 선택들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인지 <헤일, 시저>에 대한 평은 극과 극이다. 코엔형제다운 장르적 페이크는 이 영화에서도 우리에게 쓴 웃음을 짓게 한다.





     

    영화, 그에게 우린 어떤 짓을 했는가 -

       <헤일, 시저>에서 보여 지는 내용처럼 욕심을 숨기기 위해 우리는 신념과 신앙에 나를 맡기게 된다. 신념으로 매닝스는 자신을 우아하게 포장하지만 부를 위해 움직인 것에 불과하다. 핵을 포기했다는 엄청난 나르시즘에 빠졌지만, 결국 그가 선택한 곳도 핵폭탄이다. 매닝스가 가지고 있는 신념은 자기 위안일 뿐, 그가 이직을 철회하는 모습이 결코 멋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 선택이나 저 선택이나 그는 그저 부와 명예를 위해 움직인 것뿐이다. 판은 다르지 않다. 판이 다르지 않는 한 이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결국, 영화에게 우리는 똑같은 짓을 계속 하게 될 것이다.

     




    p.s.-

       <헤일, 시저>50년대 할리우드 황금기에 대한 존경을 표한 것이라고 평을 한 어떤 영화평론가와 기자의 의견에 난 철저히 반대한다.


    Written by 두루미

    이미지출처: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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